도시디자인

[스크랩] 자전거 생활화 정책,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다음피도 2009. 6. 2. 23:41

‘환경 친화적 자전거 문화 정착’이라는 정부의 정책과 그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안들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무분별할 자전거 전용도로 연장에 관한 안들과 야심차게 자전거 도시를 만들겠다고 계획하고 있는 지자체를 볼 때면, 과연 돈을 들인 만큼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자해 도로를 만들어 놓았지만 타는 사람이 없이 아무짝에 쓸모없는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은 아닐 까 하는 우려를 하게 된다.

처음 독일 와서 뮌스터에 사는 2년 동안 우리 가족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자전거였다. 아무리 현대 문명의 꽃은 자동차라 하지만 그 곳에서는 자동차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의 없는 지리적인 여건이 자전거를 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어디를 가나 도로 양 옆은 자전거 전용도로가 차지하고 있었다.

이 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거나 통학을 한다. 뮌스터 사람들은 그들의 자전거 문화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는 먼 길을 떠날 때나 사용하는 교통수단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른만이 아니라 유치원에 가는 꼬마들까지 모두다 아침이면 엄마와 함께 자전거에 노란 기를 달고 달린다. 노란 색은 ‘여기 어린이가 가고 있어요. 조심해 주세요.’란 표시다. 어른들은 깃발을 펄럭이며 꼬불꼬불 달려오는 꼬마들을 보면 재빨리 길을 비켜 준다.

자전거와 자동차가 함께 다니는 도로에서는 손을 들어 자신이 갈 방향을 뒤차에게 표시하면 자동차는 알아서 속도를 줄인다든지 정지하고 기다린다. 누군가 나서서 정리 하지 않아도, 자전거 질서는 이 도시에서 너무도 익숙하게 지켜지고 있다.

어학연수를 받으러 학교에 다니는 동안, 거의 1시간이 넘는 거리를 매일 아침저녁 아이를 뒤에 태우고 달렸다. 평지라고는 하지만 가다보면 구름다리도 나타나고 약간 경사진 곳도 있어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멋진 추억이다.

그러다가 2년 후 같은 노드라인베스트팔렌 지역이지만 좀 더 남쪽에 위치한 아헨으로 이사를 왔다. 아헨에서도 우리는 자동차가 있기는 했어도 뮌스터에서의 좋은 기억을 떠올리며 처음엔 자전거 타기를 시도해 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우선 아헨은 뮌스터처럼 자전거 도로가 완벽하게 되어 있지 않았다. 도로가 없는 곳도 많았고 있어도 쌍방향 도로가 아니라 차도의 한쪽 면만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자전거를 이용하는데 그리 불편한 요인은 아니었다. 정작 우리가 자전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완만하지 않은 지형 때문이었다. 독일은 북쪽에 비해 남쪽은 산악지대와 연결되면서 지형이 굴곡을 타기 시작한다.

만일 자전거를 타고 등교라도 할 경우 이건 만만한 스포츠 정도가 아니다. 물론 건강을 위해서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은 있을 수 없겠지만 아침 출근시간부터 온 몸을 땀으로 흠뻑 적셔야 하는 중노동을 좋아하는 직장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자전거로 통학하겠다고 큰소리 탕탕 치던 우리 아들도 딱 한 번 시도해 보더니 다시는 타지 않겠노라고 선언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내가 살던 일산 신도시가 있는 경기도 고양시 일대나 몇몇 도시는 평지가 많아 적당한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그밖에 나머지 많은 도시들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굴곡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자전거 이용에 그리 수월하지 않을 것이다.

‘자전거 타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은 자전거 보유대수를 늘리는 것도 아니고 자전거 도로를 연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무작정 조성부터 하고 볼 것이 아니라 사전에 철저히 지리적 여건을 조사해서 과연 자전거를 생활화하기에 적합한 지형인지부터 판단해야 한다.

내가 직접 경험한 독일의 자전거 도로는 이용 빈도에 따라 점유율도 차이가 난다. 아헨처럼 언덕이 많고 굴곡이 상대적으로 심한 도시는 자전거 도로가 일반화 되어 있지는 않다. 한 방향으로 뚫린 길도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언제나 한산하다. 어디를 가나 차도 양쪽으로 자전거 길이 잘 닦여 있고 자전거를 세울 수 있는 시설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온 도시 사람들이 자동차 보다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고 있는 뮌스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자전거 정책이 오래전부터 안정되어 있는 나라라고 예를 드는 독일이나 네덜란드도 대표적으로 북유럽의 평평한 지형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독일의 경우에 알프스와 접해있는 남쪽으로 갈수록 이용률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확실히 지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글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이야기지만 자전거 정책을 진행하고 있는 정부 관계자들이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가끔 아이들과 큰마음 먹고 하이킹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우리 집 주차장에 무용지물처럼 서있는 네 대의 자전거를 보면서 정부의 자전거 생활화 정책이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출처 : 독일교육 이야기
글쓴이 : 무터킨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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