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 1925년 지금의 마당루(馬當路)에 총 3층으로 지어진 동 건물은 1926년부터 1932년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사용한 상해 "옛 청사"로 한민족 독립운동발전의 경전(敬殿)으로 인 식되고 있다.
- 1990년 2월 구급 문화보호단위로 지정. 삼성 및 관련 부문 후원으로 1992년 9월, 1993 년3월, 2001년 11월 등 3차에 걸쳐 수리,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 오전9시부터 오후5시까지 참관 할 수 있고 월요일만 오전 9시부터 12시30분까지 개관하 지 않음.
- 단체 참관은 해당 단위의 소개서나 여행사 일정표를 제출하고 개별 참관자는 신분증을 제시해야한다.
- 안내원을 따라 비디오 영상실에 들어 갈수 있는 인원만큼 제한해서 들어 갈 수 있다.
- 매표처에는 책과 간단한 음료를 즐길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관람료는 15위엔이다.
- 상해임시정부는 1919년 4월 상하이[上海]에서 조직하고 선포했으며 국내외에서 3·1운동 이 전 민족운동으로 확산될 때 독립정신을 집약하여 한민족이 주권국민이라는 뜻을 표현 하고, 또 독립운동을 능률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조직하였다.
- 임시정부는 그 뒤 45년 8·15광복까지 27년 동안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 각처에서 한국인 의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투쟁하였다. 임시정부는 통치권을 행사할 국토와 국민이 없어 일반 정부와는 달랐으며, 대한제국과는 시간적 연속성이 없고 주체세력과 이념이 달라서 망명정부도 아니었다.
- 그러나 3·1운동에 의해 수립된 임시정부였으므로 전민족의 의지와 이념적 기반 위에 설 립된 정부적 조직이었다. 따라서 국제적으로는 주권국민의 대표기관(정부), 또 대내적으로 는 독립운동의 통할기구로서의 구실을 담당했다.
- 일제의 반격과 중일전쟁(1937)으로 상하이(1919) 항저우[杭州, 1932]·전장[鎭江, 1935]· 창사[長沙, 1937] 광둥[廣東, 1938]·류저우[柳州, 1938]·치장[1939] 충칭[重慶, 1940] 등으로 몇 차례에 걸쳐 거처를 옮겼다.
- 상하이시기(1919∼32)에는 국내외 동포사회에 통할 조직을 확대하면서 외교활동이나 독 립전쟁 등을 지도·통할하는 데에 주력했고, 충칭시기(1940∼45)에는 광복군(光復軍)을 창 설하여 미얀마전선에 참전하였다.
- 주소: 馬當路306弄4號 전화: 5382-4554 개방시간: 9:00-1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