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여행(1)
■ 上海의 歷史
현재 상하이는 중국 최대의 경제 중심지이다. 수도 베이징이 '정치·문화의 도시'라면, 상하이는 '경제의 도시'이다. 경제 도시답게 상하이는 11년째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훨씬 웃도는 '두 자리 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1천7백만이 살고 있는 상하이는 2007년 1인당 GDP 7천5백달러를 목표로 열심히 전진하고 있다. 푸동의 허브공항, 심수항인 샤오양샨(小洋山) 허브항만 건설, 여기에 2010년 세계박람회개최. 멈출 줄 모르는 상하이의 눈부신 발전은 앞으로도 '청신호'가 계속될 것에 아무도 의심치 않는다.
약 7천만년전 황망한 구릉지였던 상하이 땅은 세월이 변하고 지금으로부터 2백만년 전 해수의 침식 등으로 점차 삼각주의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만5천년 전부터 이 삼각주는 육지로 변하기 시작했고, 곧 지금의 모습으로 변모했다.
상하이는 '上海'라는 지명 외에 '申'과 '후'로도 불린다. 역사적 자료와 문헌을 살펴보면 상하이는 5,6천년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춘추시대에 상하이는 오(吳)나라의 동쪽 변경지대에 불과했고, 전국시대에는 초(楚)나라에 귀속되었다. 248년 초 고열왕(考烈王)은 수상인 춘신군(春申君) 황헐(黃歇)에게 상하이를 하사했다. 춘신군은 이 시절에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 위(魏)나라의 신릉군(信陵), 조(趙)나라의 평원군(平原君)과 더불어 '사공자(四公子)'로 불리었다.
후대에 와서 춘신군을 기념하기 위해 상하이를 '春申' 또는 '申'으로 일컫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현재 상하이를 지칭하는 '申'의 유래이다. 또 시 중심을 가로지르고 있는 황포강(黃浦江)은 '황헐포(黃歇浦)'로 불리다가 '황포강'으로 바뀌었다.
3세기 접어들어 상하이의 해변과 우송강(吳淞江)(또는 '소주하(蘇州河)') 입구 일대는 고기잡이 어부들이 터를 잡기 시작했다. 어부들은 갯벌에 대나무로 만든 울타리를 꽂아놓고 썰물이 되면 물고기를 포획하는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이때 만든 울타리를 '후'라고 했으며, 이는 현재 상하이를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그 이후 1267년(南宋)에 上海鎭이 설치되면서 행정구역상 '上海'라는 지명이 등장했다.
■ 上海의 근·현대와 유적지
상하이는 1842년 아편전쟁(阿片戰爭)의 결과 맺어진 난징조약(南京條約)에 의해 영·미·불 등 강대국의 무역을 위한 개항장(開港場)이 되자, 상공업도시로서 급속히 발전하여 중국 제1의 도시로 성장했다. 그러나 상하이의 실권은 외국인의 해관세무사(海關稅務士)가 장악하고, 치외법권(治外法權)이 인정되는 외국인의 조계지(租界地)가 설치되는 등 제국주의 열강의 중국 침략의 근거지가 되었다.
동시에 중국의 민족해방운동이나 노동운동의 중심지이기도 하여 1949년까지 혁명과 반혁명 세력의 격렬한 대결이 되풀이되기도 했다. 싱예루(興業路) 76호의 '一大會址', 샹샨루(香山路) 7호의 '순중샨(孫中山) 고거(故居)', 화이하이중루(淮海中路) 1843호의 '송칭링(宋慶齡) 고거' 등이 현재 남아있는 혁명역사의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이곳 상하이는 한국과도 깊은 관계가 있는 곳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이곳에서 1919년 4월13일에 조직되어 1932년 5월에 일본의 탄압을 피해 항저우(杭州)로 옮기기 전까지 활약했던 곳이다. 또 1932년 4월29일 윤봉길(尹奉吉) 의사가 이곳 홍커우공원(虹口公園)에서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 육군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 등을 폭사·부상케 한 곳이기도 하다. 현재 윤봉길 의사 의거 유적지와 임시정부 청사가 보존되어 있다.
■ 경제의 중심지
'물류가 돈'인 지금의 세계경제는 상하이를 주시하고 있다. 그 이유는 상하이의 완벽한 지리적인 이점 때문이다. 동팡밍주 앞에 유유히 흐르고 있는 황푸쟝(黃浦江)은 챵쟝(長江)에서 가장 바다와 가까이 있는 지류이다. 상하이의 중심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흐르고 있다. 다시 황푸쟝의 지류인 수저우허(蘇州河)는 푸시의 남북을 가르며 지나간다.
길이 113km인 황푸쟝은 장수성(江蘇省) 타이후(太湖) 동안(東岸)의 호소(湖沼) 지대에서 발원해 동으로 흘러 상하이로 들어가 우송(吳淞)에서 창쟝과 합류한다. 강폭은 300∼770m, 평균 360m이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강으로 옛날에는 직접 바다로 흘러 들어갔으나 창쟝 삼각주의 발달로 유로가 변하여 지류가 되었다. 우송 입구에서 서쪽으로 좀 더 가면 대운하(大運河)와도 만난다. 대운하는 베이징(北京)에서 항저우(杭州)까지, 허베이(河北)·산둥(山東)·장수(江蘇)·저쟝(浙江) 등 4개 성(省)을 남북으로 흐르는 운하이다.
이렇듯 상하이는 동서남북의 수로를 이용한 물류이동이 매우 편리하다. 또한 바다와 접해 있어 중국 해안선을 따라, 또 국가와 국가간 대량의 물류이동에 매우 용이하다. 하지만, 상하이의 물류이동에도 치명적인 틈새가 있다. 주변 바다 깊이가 매우 얕아 대형선박의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상하이 시정부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내놓은 방안이 허브항만 건설이다. 대소양산(大小洋山) 섬 전체가 항만으로 건설되어 대형선박의 정박뿐만 아니라 대형 물류기지화 해 범화동지역 물류를 담당토록 할 예정이다.
또한 이곳에서부터 상하이 남쪽 난후이(南匯)까지 총 27.3㎞에 달하는 해상다리를 건설해 물류를 육지로 옮긴다는 계획이다. 이 거대한 공정은 이미 시작되었다. 상하이는 이러한 천해의 지리·교통 요소를 가지고 있어, 중국 경제, 좀 더 나아가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될 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