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게으르지 않은 건축가의 예리한 필터
재생종이를 겉표지에 게다가종이테이프로 접히는 부분을 감싼 불친절해보이고도 돈 안들인 듯한
이 책의 정체를 파악하다가
책을 만지작거리며 들여다보니 저자의 설명 또한 익살맛다.
천경환은 천경환스럽다 ... 천경환스럽다... 몇번을 되뇌이니 친환경스러웠고 낙서같은 mm, cm, m, km를 보니
램쿨하스의 S,M,L,XL의 책이 연상되는 독특한 건축관련 책이 틀림없다.
제목에 쓰인 '게으른'에 동그라미 쫙~~ 성의없이 그려 '게으르다'로 사선 긋고 사전의 의미까지 부여한
책같지 않은 이 책이 자꾸 마음에 끌렸다.
접힌 부분의 흰색을 만져 보니 종이테이프가 아니라 붕대감고 붙일 때 쓰는 반창고 같은 느낌이었는데...
첫번째 챕터 mm 안에 속해 있는 내용들이 무엇인가를 규정지어주는 간단 명료한 설명
*손 안에 꽉 집히는 아주 사소하고 흔히 접하는 물체들이다.*
저자가 일순위로 설명하고 있는 똑딱이.. .. 우리네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신체의 일부가 되어버린 디카...
우리의 눈이 되어 .... 하루의 기록이 되고 역사가 되는 소중한 생필품이기에
어느 디자인이 손에 착 붙는가는 아주 예민하고 까다로운 문제이다.
그의 건축적 삶에 동기부여가 되었던 건담은 저자에게 있어서 치밀하고도 밀접한 반경이었을 듯 싶다.
건담시대에서 살았던 향수로 지금도 오늘이 마지막 조립이야... 하면서도 늘 끊지 못하는 조립중증에 살아간다는
저자와 같은 비슷한 경험의 사람들이 아직도 꽤나 될 것이다.
돈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불가결이고 이젠 많으면 많을 수록 절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건축을 전공한 그가 본 스위스의 엣 지페에 그의 디자인 생각을 담아보면
스위스 건축가 출신인 르꼬르뷔제의 얼굴도 반가왔겠지만..
세워도 글씨를 읽을 수 있고 뉘워도 글씨가 읽히는 이 신비로운 10프랑은
치밀한 과학적 수학적 이치를 담은 계산적이고 건축적인 입체감까지 반영된
이세계 가장 훌륭한 지폐라는 견해.
스위스 돈에 대한 분석에서 그는 더욱 치밀하게 접근하여 1 mm의 간격도 없이 예리하고 심지어 집요하게 파고든다.
스위스 10프랑.. 유럽의 언어적 조건을 감안하여 4가지 언어(스위스,프랑스,독일,이탈리아)를 표현하는 악조건을
제한된 화면에 훌륭한 개성으로 승화함.
지폐에 필요한 모든 정보들을 가로와 세로방향 두개의 층으로 배치하여 입체감을 불어넣었는데
이는 세로로 세워서 옆으로 한쪽눈을 가리고 바라보면 주목하고자 하는 정보이외의 모든 요소가 순간적으로 흐릿하게,
강조하는 요소는 또렷하게 보이게 되어 각각의 요소들이 떠다니는 느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집요함이 도를 넘어 각종 달러와 한국돈의 각양각색을 비교해본 결과
그의 스위스 돈 10프랑은 건축가출신의 집요함과 세심함 게다가 입체적요소까지 말하는 디자인적인 모든 것을 담은 굉장한 돈이였다.
천경환 저자가 직접 만든 연하장은 그의 직업적 성격과 은근한 상업적 대쉬를 복선으로 깔아놓은 매력적인 연하장으로 DIY작업이라 한다.
그의 사이트 야후.. 재미나요 jaeminahyo를 찾아들어가 책에 대한 예찬을 적었지만 yahoo메일이 없던지라 그냥 나오고 말았다.
이 서평이 그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맘이다.
2번째 챕터 cm에 대한 디자인이 궁금해지는데...
손에 잡히던 물건들에서 조금 벗어나 공존의 물건들로 여겨지는 또다른 하찮은 물건에 대한 이야기라는...
소지품을 꺼내 볼 때 아마도 왁스는 헤어스타일에 조금이라도 신경쓰는 남자라면 늘 접하는 물건일 듯..
하물며 초딩3학년 내아들도 학교가기 전 늘 이것 발라달라고 하는데...
그가 말한 왁스통은 아무 왁스통이 아니라 게츠비 왁스통이다..
동글 넙적 디자인이 손에 딱 맞고 어디에 넣어도 부담이 없으며 쌓아놓을때의 모습이
마치 장난감 블록을 쌓아 놓은 귀여운 모습이었다.
한편 아무것도 없는 무장식의 하얀 우산..
디자인 없는 디자인에 그 가치가 살아난다는 예찬으로
오히려 이러한 일회용 우산에 요즘들어 울긋불긋해지는 색깔이 싫고
순수한 이 우산에 미니멀리즘의 극치로 보는 이 저자의 견해에 공감의 미소를 띄어본다.
이 저자는 나와 같은 과(?) ....
약간의 엉뚱한 발상으로 주위를 즐겁게 한다거나 약간의 뜬금없는 생각으로 세상을 보는 점에
현실의 냉혹함 즉 늘 FM적인 공사를 하고 있는 나의 직업적 경계에 서서 늘 이런 생각은 접고 말지만
저자의 CD케이스를 연결하여 채양을 가리는 아크릴 스크린.. 그리고 시행착오를 겪어 회의테이블을 디자인하여
아쉬움의 습작을 만들어 내는 그의 찬란한 창의력에 도전이야말로
또다른 완성을 만들어내는 강한 원동력이라 생각한다.
어느날 우연히 바라본 우리 나라의 지하철 안내도를 보다가 그 주위 주변 안내도의 지도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만이 도드라지고 싶은 비례감 없는 건물의 외관도를 보고 볼품 없는 모습에
파리의 지하철 풍경도를 다시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감각없는 지도와는 반대로 파리의 풍경지도는 역세 주위에 그 아름다운 건물의 모습도
일정한 도트로 표시하여 주변 경관과 역의 위치에 상응하는 모습으로
조화로운 디자인을 추구하는 깔끔한 디자인의 지도라는 것.
잠깐 책장을 후르르 훑어본다.
책의 구성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다.
나또한 이렇게 시원스럽고 깔끔한 구성을 보며 늘 잘된 편집이라며
그래.. 이런 책을 만들어야지.. 하는데에 공감을 하지만
막상 내 책을 쓴다는 생각을 해본다면 하나라도 더 붙여 놓고 싶은 생각에
자꾸 욕심을 내게 되는 것이 현실이 아니였던가?
그래서 실제 무수한 책들의 편집 양상이 복잡하고 화면 가득 답답한 책으로
저자의 의도와 상관 없이 멀어지게 되는 경우를 수없이 많이 보아왔다.
이렇게 과감히 무글과 무사진으로 비어 놓은 책의 페이지.. 그리고 아무런 기호 없는 무디자인의 디자인...
표)또한 어느 테두리도 없이 그냥 들어와 있다.
이런 형태의 페이지 구성은 저자의 게으르거나 불친절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벽에 가까운 깔끔하고 세련된 그의 프로적 편집 감각을 최대한 볼 수 있다.
cm챕터의 마지막은 지하철 안의 비상손잡이..
대구지하철 참사이후 전철 안의 마감 소재가 불연재로 바뀌고 그에 따른 좌석의 형태도 깔끔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가장 급할 때 당겨야할 비상 손잡이의 디자인을 바라보며 몇%부족해 보인다는 단상이다.
m: 미터의 세계에 들어서면서, 몸과 분리된 대상은 몸을 감싸는 환경이 되고 , 그 환경속에서 나와 크게 다를 바 없이 존재하고 있었던 타인에 대한 의식이 생긴다. 나와 대상 사이의 교감 못지 않게 환경에서 벌어지는 '우리' 사이의 교감이 중요해지는 것..
m의 요약을 볼 때 이제 한 층 더 넓어진 공공의 디자인들이 등장 할 듯한 기세이다.
이제 공공디자인으로 시작된 주변..
길거리 보도를 보고 맨홀의 덮개를 보며 그 덮개와 보도블럭의 경계 마감을 다시금 쳐다 본다.
맨홀을 가지고 요즘 흔히들 말하는 창의적 사고에 가장 서두에 나오는
MS사의 맨홀뚜껑이 어떻게 생겼는가의 문제가 거론되면서 사람들은 바닥의 맨홀을 바라보기는 했으나
맨홀 주변의 마감이 어떻게 떨어져 있었는가 하는 오히려 더욱 디자이너들이 봐야할 마무리는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위의 지적에서 만약 동그란 두개의 맨홀이 '일' 자 글씨의 o 과 '행' 자의 받침 o 에 묻혀 배열되어 있었다면
자주 열어지는 맨홀의 이치상 이렇게 글씨가 닳아 없어지더라도
깔끔한 형태로 읽혀지는 글씨와 조금은 더욱 지속적인 페인트의 흔적이 남지 않았을까...
보도블럭위에 세워진 볼라드는 차량진입을 막기 위해 보행로와 차도의 경계부분에 설치되는 시설물이다.
위의 그림과 같은 이런 볼라드를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간혹 이것으로 조금 잘 못 후진하여 차를 손상하는 주범이다.
흔한 이 볼라드의 디자인을 유심히 바라보면
무계획적으로 바닥 패턴에 걸맞지 않은 위치에 던져놓듯 깔려 있어
그 어정쩡함에 또다른 사례를 살펴보는데.
볼라드의 가장 큰 단점을 없애어
충격흡수와 만에 하나 이렇게 세워진 거리가 차량이 제한되는 시간으로 가변성이 있을 경우
고정으로 세워진 볼라드가 움직일 수 있다면 일석이조가 아닌가?
그러기에 요꼬하마에서 그가 발견한 볼라드의 모습에서
아래 주름처리된 가동부가 있어 충격을 흡수하고 필요없을 시 전체 바닥으로 들어가는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었다.
저자가 설계사무실에서 일했을 때 D스튜디오 프로젝트에 가담하여
그의 디자인 개념과 과정이 실제 공간에 구현된 모습을 이 챕터에 살짝 끼어놓았다.
저자는 소심한 A형인가?
엿보기 형식의 그의 작품은 책속에 간간히 보일듯 말듯 그래도 할말은 해가며 잊을만 하면 나타나곤 한다.
Km : 이제 마지막 챕터... 지각의 한계에 도전하는 km의 세계에 이르러 나의 세계는 온전히 '우리모두의 세계'로 포섭되며.'대상'과 '환경'에 대한 감상은 어느새 '시간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된다. 단순한 '스케일의 확장'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이 펼쳐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제 가장 멀리 본 넓은 세계에서의 디자인들을 생각해본다.
도시속에서 고속화도로는 새로운 세계이다.
더이상의 보행자를 위한 콘텍스트는 없지만 결국 도로에서 보고가는 사물들도 결국 빠르게 진행되며
스쳐가기에 보행자의 마음과 같으며 이를 진행할 때에 어떻게 접근하는가도 중요하다는 것,
위치별 제각기 다른 풍경들이 어떤 시점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지는 도시의 고속화도로에 접목시켜 봄직하다.
동대문 운동장의 새로운 모습에 기대반 두려움반은
건축가 입장에서 보는 것 뿐 아니라 이 시대에 살 고 있는 일반인 모두도 한번쯤 다시금 생각해볼 큰 숙제이다.
과연 몇 해 후 이 곳의 모습은 새로운 변모일지몰라도
서울의 사람냄새나는 훈훈함이 느껴지던 바로 그 곳이 아니던가..
책은 단숨에 읽었지만 이 책에 대한 감흥은 한참 갈 듯 싶다.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읽어가며 때론 공감하고 때론 부정하며 내 생각도 키워간다.
공간을 보고 일하며 새로 만들고 있는 나의 머리는 항상 복잡하고 여러가지 생각에 늘 두통은 끊임없다.
하고싶은 것도 많고 지금껏 내가 이루지 못했던 일들.. 그러나 앞으로 가야할 곳이 있기에
언제나 바쁜 시간을 쪼개가며 다른 세상 엿보기도 하곤 한다.
그러나 언제나 돌고 돌아보아도 결국 직업병은 속일 수 없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말지만 ,
저자 또한 게으르고 천경환스럽다는 천연덕스럽기까지한 성격 좋은 훈남처럼 느껴지는 루즈함 속에는
사물을 냉철하고 꼼꼼하게 보는 어떤 필터보다도 더욱 세밀함과 집요함으로 단련되어진 전문 건축가였던 것이다.
그가 말하는 마지막의 노들섬.
언젠가 이 곳에서 무언가를 잊어보려는 깊은 추억이 서린 공간이었을지 모르겠다는 내 주관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다가올 변모하는 이 공간을 기대해 보지만
서울은 변하고 있고 또 그 모습이 변할 지라도 사람의 마음만은 변하랴는 글에
이 건축가의 마음이나 매일 시도때도 없이 뒤집고 버리고 도깨비집을 짓는 나의 마음도
결국 '사람 ''인간의 마음의 문제'가 최우선이라는 그것이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노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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